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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대 이후 러시아의 국영기업 사유화 과정
    글로벌 경영 2022. 7. 2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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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등 동유럽국가를 장악하였습니다. 이후 동유럽은 소련에 의해 지배되는 공산권 국가로서 서방세계와 많은 갈등을 겪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유럽과 서유럽 간의 갈등은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소련공산당의 총서기로 선출되고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시작되면서 해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는 공산주의인 동유럽과 자본주의인 서유럽국가 간의 경제력의 차이가 너무나 벌어져서 골수 공산주의자도 공산주의로 경제를 운영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 중반부터 동유럽국가들은 고르바초프의 묵인하에 자신의 경제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정치·경제체제를 바꿔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1989년부터 동유럽의 공산정권이 하 둘씩 붕괴하기 시작하더니, 1991년에는 소련의 공산정권마저도 붕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기에는 소련에서도 정치적인 자유가 상당히 이루어졌고, 1991년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키기 위한 군부의 쿠데타가 실패하게 됨에 따라 1992년 1월 1일 소련연방 공화국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소련은 15개의 독자적인 공화국들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11개의 공화국은 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라는 연방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동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정치개혁과 아울러 경제개혁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공산주의 계획경제 하에서 이루어졌던 가격통제는 점차 없어지게 되었고,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었으며, 기업 간의 경쟁이 장려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제개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 공산주의 계획경제 체제 하에서 국가 소유였던 기업들이 민간투자가의 손으로 넘어가는 사유화 과정이었습니다. 동유럽에 있는 국가들은 저마다 빠른 속도로 국영기업을 사유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사유화 과정은 한국기업을 비롯하여 동유럽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에게 아주 낮은 비용으로 동유럽에 진출할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이 동유럽의 사유화 과정은 각국의 정책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폴란드는 점진적인 사유화를 추구했지만, 체코에서는 짧은 기간에 광범위한 사유화 작업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이 일찍부터 국영기업의 매각에 나선 데 비해 러시아는 1992년에야 국영기업의 사유화 계획에 착수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러시아의 사유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는 우선 소규모기업들을 즉각적인 경매에 부쳐서 현찰을 받고 매각하는 것으로 사유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로 식당과 작은 가게 그리고 아파트와 같은 소규모 기업이나 자산들은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경매에 응해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5년까지 러시아에 있는 소규모기업의 약 2/3 이상이 경매에 의해서 매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의 대형기업의 매각은 좀 더 조심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러시아는 이른 시일 안에 국영기업을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체코가 시행한 방법과 같이 이들 기업의 주식을 경매에 의해서 처분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러시아 정부는 1992년 10월에서 1993년 1월의 기간 중, 갓난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러시아인에게 한 장의 바우처 voucher를 25루블 약 80원에 지급하였습니다. 이 바우처란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일종의 증명서입니다. 이 바우처의 액면가는 1만 루블 약 2만 원으로서, 총 약 1억 4천 4백만 개의 바우처가 모든 국민들에게 하나씩 지급되었습니다. 이 바우처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다음 세 가지 옵션이 있었습니다. 첫째, 바우처를 시장에서 팔아 현찰을 받는 것이고, 둘째, 이 바우처를 가지고 국영 기업의 매각할 때 그 국영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러시아 정부가 실시하는 국영기업의 경매에 참여하려면 이 바우처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바우처를 투자신탁회사에 위탁하여 이들 투자신탁이 기업을 구입하고 경영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바우처를 사용한 민영화의 한 사례로서 1992년에 러시아의 가장 큰 과자공장이었던 볼셰비키 비스킷 공장은 1993년에서 1994년까지 80%에 달하는 주식을 바우처를 통해 매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수백 개의 기업이 바우처프로그램에 의해서 사유화되었으며 그 결과 1994년 6월에 이르러서는 러시아 노동자의 약 80%가 사기업에서 종사하게 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사유화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국영기업의 사유화는 바우처프로그램을 통해서 외국기업이 손쉽게 러시아에 진출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외국 기업이 바우처의 구매를 통해 러시아의 국영기업을 매입하는 데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들 국영기업이 속해 있는 산업은 상당히 잠재력이 큰 산업 분야입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석유 보유량의 10%에 달하는 막대한 유전을 가지고 있고, 천연가스도 전 세계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비재산업에서도 역시 1억 5천만의 인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담배나 비누 같은 일상 소비재는 공산정권 시절에 생산량이 부족하여 수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산업이었으므로 이들 국영기업을 인수하여 정상화하면 거대한 시장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외국기업이 러시아에 느끼는 매력은 이들 국영기업이 가진 자산의 가격이 매우 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원유의 경우 미국기업이 보유한 원유의 시장가치는 배럴당 7달러를 넘는 데 비해 러시아기업이 보유한 원유의 시장가치는 0.17달러에 불과하였습니다. 전화 회선당 시장가치 역시 미국에서는 1,637달러인 것에 비해 러시아에서는 69달러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처럼 러시아의 국영기업 매각이 값싸게 이루어진 것은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에 기인합니다. Yelchin 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추진된 러시아의 사유화 정책은 러시아의 보수 공산주의자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었습니다. 이러한 저항으로 인하여 사유화 과정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러시아 정부는 가장 이른 시일 안에 많은 국영 기업들을 사유화하는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이 국영 기업을 매각함으로써 정부 수입을 늘리려는 것에 비해 러시아의 사유화는 가장 이른 시일 안에 모든 기업을 사유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러시아 정부는 1992년 1월 당시 1만 4천여 개에 달하는 국영 기업들의 장부 가격을 환산한 이후 이 장부 가격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1992년부터 1994년 사이 러시아의 물가가 약 10,500%나 인상될 정도로 초인플레이션이 진행된 가운데 이들 장부가격에 입각한 국영기업의 매각가격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습니다. 또한 이들 장부가격은 그 국영기업이 가진 자본재의 감가상각 가치만을 포함했을 뿐, 기술과 같은 무형자산이나 토지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유화 직후 이들 기업의 시장가치는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앞서 예를 든 볼셰비키 비스킷 공장의 가치는 1992년 말에 사유화가 된 후 약 2년 사이에 세 배가량 상승하였습니다. 다른 동유럽의 대규모 기업들 역시 러시아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외국 투자가들 손에 넘어갔습니다. 체코의 가장 큰 자동차생산기업이었던 Skoda는 독일의 Volks-wagen에 매각되었으며, 헝가리의 전구 제조회사인 Tungsgram은 미국의 GE에, 헝가리의 Auto-kozern은 일본의 스즈키에, 그리고 폴란드의 FSO는 한국의 대우자동차에 각각 매각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동유럽의 사유화에 대한 외국기업들의 참여는 해외직접투자의 증가로서 나타나는데,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동유럽에 대한 투자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에 집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국가는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중화학공업과 기초산업이 발달되어 있었고 일찍부터 국영기업의 사유화와 경제규제철폐를 통한 경제개혁을 시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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