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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TT 우루과이라운드 WTO 체제의 관세협정 출범
    글로벌 경영 2022. 7. 2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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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TT의 출범

    자유로운 국제무역은 당사국과 교역상대국의 부를 동시에 증가시킵니다. 그런데도 근대부터 무역에 대한 각국의 정책은 대단히 보호무역적인 성향을 보여 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 세계 경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입품에 대해 보호무역 장벽을 높였습니다. 모든 국가가 자국 산업을 위해 보호무역 장벽을 높인 결과, 각 국가 간의 교역이 감소하여 1930년대의 전 세계적인 대공황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더 자유로운 무역환경을 만들기 위한 국제적인 협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은 미국으로서는 미국상품의 자유로운 수출을 위해 국제무역 질서 확립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주도하에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 GATT라고 하는 국제무역협정이 1947년에 체결되었습니다. GATT는 관세, 보조금, 수입할당이나 이 밖에 이와 유사한 보호무역 장벽을 철폐함으로써 무역을 자유화하기 위한 다자간 협정입니다. 1947년에 19개국으로 출발한 GATT는 2003년 4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46개국이 가입할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GATT의 근본정신은 최혜국원칙 Most Favored Nation : MFN입니다. 이 규정은 GATT에 참여한 모든 국가에 무역에서 동등한 지위를 보장한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호주로부터 양모를 수입하는 데 10%의 관세를 부과하다가 이를 4%로 인하한다면 이와 같은 관세 인하 혜택은 GATT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다른 국가에도 동등하게 적용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최혜국 규정은 GATT에 참여한 국가들이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GATT의 두 번째 주요 원칙은 수입할당과 다른 비관세장벽보다 관세를 선호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입할당을 비롯한 비관세장벽은 수입 물량을 규제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기술 진보에 의한 효율성 증가의 가능성을 없애고 있습니다. 따라서 GATT는 이러한 비관세장벽보다 장기적인 폐해가 훨씬 적은 관세를 이용하도록 가맹국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GATT는 긴급수입제한 조치 safeguards를 두어 각국 정부가 자국의 산업이 수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수입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습니다. 이 긴급수입 제한조치 규정에 근거하여 미국은 과거에 자신의 상법 301조에 근거한 반덤핑규제를 GATT의 예외 규정으로서 활용하여 왔습니다. 이처럼 1947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GATT는 점진적으로 회원국의 수를 증가시켜서 각국에 만연해 있는 각종 관세 및 비관세무역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GATT는 이와 같은 무역장벽의 철폐를 위하여 여러 단계의 라운드를 실시하였습니다. 1973년에서 1979년까지 계속되었던 도쿄라운드는 비관세장벽을 현저하게 줄인 공헌을 하였습니다. 2009년 이후 도하라운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균적인 관세율이 하락하지만 GATT의 예외 규정인 긴급수입제한조치를 활용한 개별적인 무역규제는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슈퍼 301조를 남용하였습니다.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적자가 심해짐에 따라 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슈퍼 301조를 사용하여 반덤핑규제를 하거나 일본의 시장개방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슈퍼 301조를 활용하여 무역자유화를 이룬 사례는 35%에 불과하고, 40%는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0%는 오히려 보복당하는 등 슈퍼 301조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는 상당히 적었습니다. 다음 단락에서 살펴볼 우루과이라운드에서는 1980년대 들어 GATT가 가진 한계가 드러나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GATT의 규율을 벗어나 슈퍼 301조 등을 통한 반덤핑규제나 시장개방압력을 독자적으로 펴나감에 따라 GATT의 영향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무역시스템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와 WTO 체제의 출범 
    우루과이라운드는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1980년대 들어 위축된 GATT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보다 체계적인 국제무역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1986년부터 1993년까지 회담을 계속하여 1995년부터 효력이 발생하였습니다. 과거 GATT가 공산품과 원자재에만 적용되었던 협정이었다면 이 우루과이라운드는 여기에 서비스의 국제무역에까지 그 적용 범위를 넓히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지식재산권 문제와 농업 부문에서의 보조금삭감 문제 그리고 위반국에 대한 GATT의 제재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안건으로 상정되었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는 약 7년 동안 계속되면서 상당한 난항을 겪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 간의 농업 부분에서 의 보조금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우루과이라운드의 종료 시한을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OECD 국가들의 농산물보조금은 여전히 높은 편이며, 미국이 이러한 농산물보조금을 없앨 것을 주장하는 반면, 유럽연합과 일본, 한국 등은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이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의 중요한 결과는 공산품에 대한 관세가 1/3 이상 감축되었고 농업 부분에 대한 보조금이 상당 부분 격감하였다는 점입니다. 또한 서비스 부문에 서의 공정한 무역과 시장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규정하였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의 폭을 확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의 가장 큰 성과는 지금까지 GATT가 위반국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이러한 제재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 : WTO를 창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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